공지사항
무명을 밝히는 등불, 마산 중앙포교당 정법사

강선주 중부서장의 기고를 읽고

최고관리자 | 2008.09.20 16:10 | 조회 1968

[김소봉 칼럼] 강선주 중부서장의 기고를 읽고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한다. 오직 신을 의지하는 기독교로서는 당연한 지적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아첨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는 해석이 달라야 한다. 도척이란 도둑이 기르는 개가 성인인 요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 임금이 성인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원중부경찰서장인 강선주 총경이 지관스님의 검문을 공정한 법집행으로 규정지은 것과 불교계의 대정부 거리투쟁을 탈법행위로 간주한 기고는 틀린 지적이 결코 아니다. 도척의 개처럼 상대가 정권의 실세나 자신 조직의 총수가 아니기 때문에 짖은 것인데 뭘 이처럼 야단법석을 떠는지, 원? 생존과 영달의 법칙에 이처럼 충실하고 순진한 경찰공무원은 첨 봤다. 현실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나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처럼 강 총경의 기고문장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해도 불교도들이 별스레 문제 삼을 대목은 없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교도들은 수없이 부처님을 비난하고 매도했으며 제자들은 거리에서 수난을 당했다. 그러나 국가원수를 포함한 일부 위정자나 강 총경 자신 같은 공직자들이 종교편향주의로 국정을 지혜롭게 운용 하지 못한 것 역시 그 또한 엄연히 불법이라는 사실과,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국가원수가 유감을 표명하고 국회가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법제화하려는 엊그제 보도된 사실조차 까먹고 기고에 삽입하지 않은 것은 강 총경이 경찰간부로서의 과중한 공무집행으로 인해 기억력에 다소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해하자. 원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잖나? 분별없는 하룻강아지를 발로 걷어차는 행동은 차는 쪽에 더 문제가 많다. 언젠가 부산에서 개최된 개신교 대부흥회에서 “지역에 있는 사찰은 모두 무너져라!” 는 현수막이 나부끼는 현장을 방송과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 목격했다. 당시 이명박 장로님도 어청수 경찰청장처럼 그 부흥회에 이름이 헌정돼 있었는데 개신교도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부흥회에서 불교사찰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라고 수만 명이 밤새 땅을 치고 울고불고 기도하며 성전(聖戰)의 나팔을 불어댔건만 부산 시내 구석진 곳의 산내 암자 한 채도 무너지기는커녕 사찰 추녀 끝의 기왓장 하나도 부스러진 게 없었다. 아주 말짱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불교도가 아니라 일부 사이비 개신교였음이 만천하에 들어났고 대다수 국민들은 냉소를 머금었다. 비록 강 총경의 기고가 경찰간부로서 통상적인 준법질서를 강조한 단상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분이 불교계를 훈계한 것처럼 개신교도들의 종교인답지 않은 저질 부흥회를 지탄한 전력이 있다거나 그가 준절하게 꾸짖은 것처럼 이 사회에 만연한 탈법시위나 집회를 겨냥한 훈계가 전무(全無)하다는 게 곡학아세(曲學阿世)나 용비어천가처럼 비쳐져 몹시 유감이다. 그것 한 가지를 빼놓고는 종교평론가나 신춘문예에 등단한 수필가를 뺨칠 정도로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세련된 문장이었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강 총경이 자신은 특정종교와 교도들에게 비판의 총을 난사하고 나서는 당당하게 되받아야 할 비판의 반격을 겁내 그가 수장으로 있는 창원중부경찰서 홈피의 자유게시판 빗장은 단단하게 못질하고 잠적해버렸다는 점이다. 강 총경의 기고를 처음 읽고 필자는 불교계가 오히려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대목이라고 여겨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강 총경의 이 같은 비겁하고 졸렬한 이율배반을 지켜보고 난 후에는 묵혀둔 ‘반론이라는 최신형 총’을 꺼내 실탄을 장전했다. 그러나 상대가 비판했다고 더불어 상대를 저격하고 매도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자대비가 아닌 건 분명하다. 도척의 개나 하룻강아지 같은 철부지 경찰공직자 한 사람을 상대로 일전불사를 벌이는 불교도들의 떼거리 반격은 해프닝처럼 우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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