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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을 밝히는 등불, 마산 중앙포교당 정법사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 입적

관리자 | 2004.12.01 21:53 | 조회 2577

한국불교 해외 알린 '세계화 스님' <한국일보 2004/12/1/수 문화26> <세계일보> <연합뉴스> <매일경제> ■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 입적 미·유럽 등 30개국 120개 선원 세워 현각·무량 스님 등 외국인 제자 길러 '모든 것이 禪… 생활 속 최선' 가르침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청산유수(靑山流水)이니라.”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이끈 조계종 원로이자 화계사 조실인 숭산(崇山)스님이 30일 오후 5시15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 세수 77세. 법랍 57세. 1927년 평남 순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일제강점기 지하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해방 후 동국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다 47년 마곡사에서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스님은 이 때 금강경을 읽다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ㆍ무릇 모습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다)’이라는 대목에 발심, 출가를 단행했다. 49년 수덕사에서 고봉스님을 법사로 비구계를 받고 화계사 주지, 불교신문사 초대사장, 조계종 총무부장, 중앙종회의원, 원로회의 의원 등을 지냈다. 영결법회 및 다비식은 4일 오전 10시30분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진다. 숭산스님은 우리 불교계에서 누구보다 먼저 전등의 눈을 해외로 돌린 선각자였다. ‘세계일화(世界一花ㆍ세계는 한 떨기 꽃)’라는 법문은 당대의 본분종사로 선풍을 드날리던 만공스님이 해방직후 남긴 화두였다. 하늘과 땅, 해와 달, 공기와 물이 둘이 아닌 한뿌리라는 것이 그 사상이다. 수덕사 덕숭문중의 가풍을 이은 숭산스님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함축한 이 예언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을 걸었다. 지난 40년간 한국선불교를 세계에 알린 그의 삶은 또 다른 구도의 행각이었다. 66년 일본 도쿄(東京) 홍법원을 시작으로 해외 포교에 나서 72년 미국 보스턴 인근 프로비던스에 조계종관음선종회 재미홍법원을 열어 미국인들에게도 한국불교를 가르쳤다. 스님과 제자들이 미국,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 세운 선원이 30여 개국에 120여 개, 신도만 5만여명에 이른다. 외국인 제자들에게 설법하고 있는 숭산스님(왼쪽) 숭산 스님은 도미 직후 영어를 배우고 아파트 임대료를 내기 위해 미국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일했으며, 이 때 우연히 책에 실린 사진만으로 스님을 알고 있던 브라운대 불교학 교수의 눈에 띄게 돼 미국대학에서 한국불교를 알리게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당시 숭산스님은 영어를 몰라 포교에 고생이 심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한번은 스님이 “참선이라는 것은 자성(自性)을 깨달아서 자기를 완성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오”하고 2분 정도 말했더니 교수가 통역을 하는데 2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교수에게 “그건 당신 얘기지 내 얘기가 아니오. 그걸 해석하면 어떻게 해요”했다고 한다. 스님이 가르친 미국인 가운데는 하버드, 예일, 보스턴대 학생들이 많았고 유럽과 동구권 유학생들도 있어 이들이 귀국해 선원을 개설하자 스님도 세계를 순방하며 한국 선을 가르쳤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널리 알려진 미국인 현각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 미국 LA 북쪽 캘리포니아 산속에 한국식 전통사찰 ‘태고사’를 지으며 최근 자전에세이 ‘왜 사는가’를 펴낸 무량 스님, 하버드대 출신의 무상스님, 예일대의 해량스님, 보스턴대의 무심스님 등 조계종으로 출가한 제자만도 수십 명에 이른다. 숭산스님과 수제자인 현각스님의 만남은 실로 기연이었다. 90년 2월 어느날,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 재학중이던 현각스님은 숭산스님의 강연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미국과 독일의 유명대학에서도 찾지 못했던 삶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 숭산스님의 어눌하고 짧은 영어강연 속에 있을 줄이야. 현각스님은 그날로 숭산스님에게 귀의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한국을 찾아 ‘구도의 길’을 시작했다. 숭산스님은 국제 포교활동으로 명성을 얻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평화운동으로 유명한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과도 친분을 나누었다. 스님은 평소 “행주좌와(行住座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모든 것이 선이 아닌 것이 없다. 생활 속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이라고 가르쳤다. 제자들과 일대일 인故訝?통해 지도하는 ‘독참’(獨參ㆍ선문답)은 스님의 독특한 지도방식이다. 외국인 제자들이 한국에서 불교를 배울 수 있도록 화계사에 국제선원을 세웠으며, 계룡산에도 국제선원 무상사를 개원했다. 스님은 불교계가 어려움에 처했던 62년 비구ㆍ대처 통합종단의 비상종회 의장, 조계종 재무부장 등을 지내기도 했으나 종단 정치에 철저하게 무심했다. 자신의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는‘오직 모를 뿐’ ‘선의 나침반’ ‘허공의 뼈’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제자들이 출간한 ‘부처님께 재를 털면’등의 법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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